본문 바로가기

상식사회

[사설]용산참사 수사 기록 숨기는 게 수상하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첫 공판을 앞두고 검찰이 수사기록을 선별 공개해 은폐 의혹이 일고 있다. 법원이 공개하라고 결정했는데도 검찰이 1만여쪽의 수사기록 가운데 3000여쪽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들이 법원에 압수해줄 것을 신청한 이 미공개 수사기록에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신두호 전 서울경찰청 기동단장 등 용산참사 당시 핵심 경찰 지휘관 8명의 진술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변호인 측은 핵심 쟁점인 화재가 언제, 왜 일어났는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전면 공개가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 투입됐던 특공대원들이 ‘지휘부의 지시’에 따랐다고 진술하고 있어, 당시 경찰 수뇌부가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가 밝혀져야 한다는 변호인 측의 공개요구는 진상규명이란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검찰은 ‘농성자 범죄’를 다루는 재판에 경찰관 수사기록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궁색한 논리다. 현장 투입 경찰의 진술을 공개하면서 지휘부의 진술을 감춘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형사소송법상 ‘국가안보나 증인보호 필요성, 증거인멸 우려 등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검찰은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진상을 규명해야 할 검찰이 어떤 ‘상당한 이유’에서 경찰 지휘부의 진술을 숨기려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검찰이 경찰 수뇌부에 내린 무혐의 결정을 굳히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검찰은 용산참사 수사에서 권력 남용을 단죄하기보다는 폭력시위를 유죄로 몰아가는 데만 급급해하는 인상을 주어왔다. 수사기록의 선별 공개를 고집한다면 검찰은 왜곡·은폐 의혹만 굳힐 뿐이다. 이는 참사의 희생자에게도 못할 짓이고, 검찰로서도 자해하는 꼴이다. 검찰에 진실규명 의지가 없다면,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출처 : 경향신문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