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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책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10점
정찬용.안희정 외 엮음/책공방 우공이산

소설가 배명훈 씨는 자신의 사전에 ‘바보’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현대 도시인들 사이에 합의된 최소한의 사악함을 습득하지 못하여 타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간의 도리를 행함으로써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사람!” 이처럼 대통령님의 원칙과 상식, 그 바보정신을 정확히 설명한 표현이 또 있을까요. 우리들의 사명은 그 정신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힘이기도 하구요. 각자의 가슴에 남아 있는 대통령님에 대한 많은 추억이 이런 의미로 부활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명숙총리님의 추천사중 너무 마음에 와 닿는 바보 인간 노무현의 참 가치를 알게 해줄 책같습니다.

http://lux99.tistory.com2010-03-10T01:37:160.31010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은 역사적 사건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유엔 사무총장에 반기문씨를 후보로 밀어붙일 생각을 최초로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골프실력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면면과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어났던 뒷 얘기 및 노무현과 정치역정을 함께한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를 묘사한 책이 나왔다.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수석, 보좌관, 비서관, 행정관 등 참모들 가운데 정치에 뜻을 둔 인사들의 모임인 청정회(회장 이용섭 의원) 회원 23명이 공동으로 저술한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참여정부 청와대 참모들이 본 인간 노무현>(책공방 우공이산 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비화들이 듬뿍 담겨있다.
그 중 의미있는 내용을 몇 가지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10.2 남북정상회담 때 육로방북이라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오승록 의전비서관실 행정관(현 민주당노원을 지역위원회 청년위원장)이었다. 그는 당시 정상회담 사전 실무회담 차 육로로 개성을 오가던 중 6.15 남북정상회담으로 하늘길을 열었다면 이번에는 '땅길'을 여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떠올려 이를 관철시켰다.

2)새로 선임될 유엔 사무총장에 한국인사가 도전해볼 만한 상황이라는 판단을 하고 이를 처음 추진키로 한 사람은 김우식 비서실장과 이광재 의원(당시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이 의원의 글에 따르면 국정상황실장 때 외교문제 전반을 스크린하다 유엔 사무총장직에 한국이 도전해볼만하다는 판단을 하고 김우식 실장과 협의 후 조심스럽게(외국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예비후보군을 정하고 관리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후보군 가운데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이 가장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왔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아래 총력전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가 터졌는데 바로 '김선일 사건'이었다. 야당이 반 장관 경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참모들도 반 장관 해임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때 노 대통령은 "내가 욕을 먹지, 유엔사무총장 추진을 여기서 그칠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반장관을 옹호했다.
반장관이 유엔사무총장에 당선된 후 이 같은 비화를 공개하자는 내부 건의가 있었으나 노 대통령은 "쓸데없는 소리, 반기문 총장이 잘 됐으면 된 거고, 반기문 총장에게 영광을 돌려라. 기분좋다"라고 말했다.

아~~~~~~~~~ 기분좋다 하시는 노무현대통령이 떠오르네요. ㅜㅜ


3)노무현 대통령은 새로운 정보를 익힐 때 통상 ①책을 본다②외운다③물건을 산다④분해한다⑤원리를 이해한다라는 순서를 거친다.
이광재 의원의 회고에 따르면 의원시절 어느날 자택을 방문했는데 온 집안이 컴퓨터를 분해해 놓은 것으로 어지러워져 있었다. 여사님께 무슨 일인가 여쭈어 보았더니 “컴퓨터 관련 책을 세 권 사시더니 몽땅 외우고 나셔서 아들과 더불어 컴퓨터를 사가지고 오셔서 분해해 보면 원리를 알 수 있다 하여 분해하였으나, 조립을 다 못해서 그렇다.”는 말씀. 아들 건호씨는 나가고 없고 노 대통령 혼자 조립에 열심이었다. 어어지는 사모님 말씀, “언제는 낚시를 배운다고 하시더니 낚시 책을 사가지고 오셔서 ‘음 원리가 이렇군’ 하시곤, 낚시와 관련된 물품을 죄다 사가지고 오셔서 낚시 도구가 한 몇 가방 돼요.” “집에 전기불을 갈거나 두꺼비 집 같은 것 가끔 손 볼 때가 있는데, 이에 대비해야 하신다고 공구 통을 사가지고 오셔서 집에 없는 공구가 없어요.” 노대통령의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렇다.
바로 이 같은 탐구정신으로 청와대 내부 전자결재시스템인 e-지원도 만들었고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으로 비서실에 과학기술보좌관직도 두었다는 것이다.

4)노 대통령의 골프실력은 핸디캡이 90대 중반쯤이었다. 노 대통령과 현직 때와 퇴임후에 골프를 함께 한 참모들의 회고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골프실력은 90대 중반이었고 스윙하나하나에 매우 궁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다. 현직 때는 경호상의 이유로 주로 태릉과 남성대 등 군골프장을 이용했다. 또한 싱글골퍼라는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권양숙 여사도 골프실력이 노 대통령과 비슷했다. 아울러 권 여사가 체인스모커라는 이야기도 완전히 헛소문이라고 참모들은 전했다.

5)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매우 선호했고 이를 추진하기위해 노력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성환 정책조정비서관(현 현 한국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의 글이다.

2006년 10월 정책조정비서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필자는 대통령께 「참여정부 정체성과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올리면서 참여정부의 노선을 “중도 개혁”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노선은 중도개혁이 아니라, 「합리적 진보」 혹은 「실용적 진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2004년 탄핵 후 업무에 복귀하신 후부터 간혹 “진보”라는 용어를 쓰신 적이 있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노선을 공식적으로 “진보”라 말씀하시니 내심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진보 = 좌파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이 진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까지 민주진영은 이를 과감하게 쓰지 못했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50년이 넘도록 지속된 냉전이데올로기의 덫으로부터 민주진영도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데 이 금기를 대통령이 깨버린 것이다.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 어정쩡하게 중도를 표방하는 것보다는 진보의 가치와 지향을 명확히 하되 필요한 경우 실용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정책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6)궁리와 연구에 몰두한 대통령의 모습도 여러 곳에 묘사돼 있다. 이 가운데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현 노무현 재단 사무처장)의 발문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헉!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토론 좀 하고, 정리까지 한 번 해봐라,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zzz” 2009.02.04 21:40 | 노무현

지난해 입춘 날 노 대통령이 성치않은 허리를 부여안고 밤늦게까지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리다 참모들과 공유하는 인터넷의 비공개카페에 '카페의 운영 시스템과 연구할 줄거리'를 올려놓은 대목입니다.

7)인사에 관한 비화도 흥미롭다. 초대 고건 총리가 김두관, 강금실 장관 임용에 반대한 내용과 후보시절 받은 인사청탁성 이력서를 불태운 사건 등이다. 다음은 정찬용 인사수석의 글이다.

이런 사람은 제청 못해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 시절, 내가 막 합류해 업무를 보기 시작했을 때이다. 참여정부 조각을 위한 장관 인선절차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인선 내용을 보고 받더니 서류를 덮었다. “아 참, 여기서 봉수(封手)를 합시다. 이것은 총리가 제청하게 되어 있잖아요? 총리 내정자에게 상의를 해야 하니 이안을 그대로 말씀드리고 오세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는 절차를 지키라는 말씀이었다. 나와 신계륜 인수위 인사특보가 고 건 총리 내정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댁 근처인 동숭동 한 카페에서 후배분과 맥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기분 좋게 맞아주었다. 생맥주 500 둘과 소주 2병을 더 시키더니 합석중이던 후배를 먼저 보냈다. 우리가 지금까지의 과정을 말씀 드리고 대통령 당선자의 뜻을 전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법무장관에 강금실 변호사’ 했더니 “아, 이것은 경우가 아닌데요.”라며 깜짝 놀랐다. 이어서 ‘행자부장관에 김두관씨’했더니 이번엔 “나는 제청 못하겠습니다. 나 총리 못하겠습니다.”하는 것이었다. “군수출신이 어떻게 전국의 광역단체장을 포함한 단체장, 중앙부처 고위간부를 진두지휘할 수 있겠습니까? 영이 제대로 서겠습니까? 나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창동 문광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약간 반대했다. 후보자들 인품이나 개인적인 친소관계가 아니라 경력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대통령 취임식이 내일 모레인데 큰 일 나게 생겼구나…….”라고 나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200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당선자에서 신분이 바뀐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주인으로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먼저 고 건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보냈다. 그리고 고 건 총리 내정자,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 꼬리를 뗀 인사보좌관인 나와 대통령 이렇게 4명이 청와대 2층 응접실에 앉았다. 나로서도 첫 인사보좌관 업무였다. 그 자리서 조각에 대한 표를 내놓고 대통령이 직접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특징이 ‘개혁 장관, 안정 차관’의 기조로 가는데 총리께서 두 장관에 대해 적합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저를 믿고 한 번 열심히 잘 해 보십시다.” 특히 강금실, 김두관의 두 사람에 대해 총리 내정자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다. 총리 내정자도 결국 수락했다. “봉투 다 불태워 버리시오” 어느 날 최도술 총무비서관이 내 방에 왔다. "정 보좌관님은 참 행복한 분입니다. 부럽네요." "왜요?" "대통령께서 보좌관님을 참 극진히도 배려하십디다." 그러면서 전날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권양숙 여사가 대통령 서재를 정리하다가 서랍을 열어보았다. 100여 통에 이르는 흰색 봉투들이 들어있었다. 이력서들이었다. 대부분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권 여사는 최도술 총무비서관을 불렀고, 최 비서관은 그걸 대통령에게 전했다. "그걸 몽땅 다 불태워버리시오. 이것을 내가 다 주면 인사수석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겠소?" 최 비서관이 그걸 태웠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던 분들이 준 것을 쌓아둔 같아 보였다고 한다. 최 비서관은 그 얘기를 들려주면서 "대통령께서 뒤에서 버티고 계시니 좋겠다."고 했다.

또한 최광웅 인사제도비서관의 글에는 대사직에 외부인사를 수혈하려는 청와대와 이를 반대하는 외교부의 치열한 접전도 나온다.

참여정부 인사개혁 성과의 중요한 하나가 바로 고위공무원단 제도의 도입인데, 내가 인사제도비서관 시절인 2005년 12월 국가공무원법 개정까지 이루어낸 바 있다. 국가 고위공무원을 범정부차원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정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위공무원단제도는 중앙행정기관 실국장급이 대상으로 고위직이 개방되고 부처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등 공직사회 변화는 괄목할만하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을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던 부처는 다름 아닌 내가 인사운영을 관장하는 외교통상부였다. 더구나 당시 외교부장관은 2004년 초부터 장수하며 대통령의 전적인 신뢰를 받고 활약 중인 반기문 현 UN사무총장, 그리고 인사업무 실무파트너인 기획관리실장은 나의 대부 유인테의원의 매제인 김수동 前캐나다 대사였다. 김실장은 유의원과 경기고, 서울대를 같이 다닌 오랜 친구로 일찍이 친구의 여동생을 낚아챈 관계로 그와도 10년 이상의 교분이 있던 터였다. 또 이 인사라인에 있던 1차관은 현재 이명박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유명환차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막강하기도 했지만 또 개인적인 인연으로 얽혀있는 이들을 상대로 특유의 뚝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외무공무원은 일반직공무원에 비하여 1년여 늦게 고위공무원단제도가 도입되어 내 손으로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그들과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외교관은 직무의 중요성, 근무조건의 특수성으로 인해 특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되며 외무공무원법으로 관리한다. 특히나 대부분이 외무고시 출신들인 130여개 재외공관의 공관장(대사, 총영사)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나는 우선 고위공무원단제 시행의 전단계인 이 공관장 인사에서 민간 및 타부처 개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준비하였다. 2005년 말 공관장 인사에서 34명 중 7명을 非외교관으로 채운 것이다. 중남미전문가인 송기도 전북대교수를 콜롬비아 대사에, 우크라이나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국내 유일의 허승철 고려대 교수를 우크라이나 대사에 추천하였다. 또 스페인어를 전공한 행정고시 출신 직업공무원 인병택 국정홍보처 국장은 도미니카 대사에, 총리실과 청와대에서 오랜 공직생활로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권찬호 국장은 시애틀 총영사에 추천하였다. 그리고 통상과 교민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 베트남 호치민 총영사에는 민영우 산업자원부 국장을 추천하고, 보스톤 총영사로는 동아일보와 한겨례신문에서 30년 넘게 일해 온 국제통 여성 언론인 지영선 논설위원을 추천하였으며, 동기가 참모총장에 발탁되는 바람에 아깝게 옷을 벗은 예비역 공군중장 출신 이기동장군은 분쟁지역인 나이지리아 대사로 추천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교부 내에도 전문가가 많은데 왜 외교 비전문가들을 발탁하는가라는 비판과 저항은 상당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꽤 큰 심적 압박으로까지 다가왔다. 특히 반기문장관 이하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고 있던 외교부가 이를 뒤집기 위해 벌인 집요한 노력은 그 전개 논리만큼이나 나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께 받은 미션은 모든 부처에 고위공무원단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외교부는 그 전단계로 일정비율 재외공관장 개방을 해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뜻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었다. 고위공무원단제 취지에 의하면 또 그 비율이 민간 개방 30%에 타부처개방 20%, 도합 50%를 외부인사로 기용하는 것이지만, 재외공관장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이번에는 우선 30%부터 시작하자는 것이 내 반격논리이고 역제안이었다. 그래도 일은 여의치 않았고 쉬이 결론이 나지 않았다. 비장의 카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일이 어려워질 때마다 나는 빽을 동원하곤 하였다. 내 빽은 바로 노대통령이었다.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대통령께 온라인 보고를 드렸다. 고위공무단제도 도입정상 추진, 다만 외교통상부의 반대가 완강함(보고). 원안대로 추진할 것(지시사항). 금번 재외공관장 인사에 외부인사를 20% 기용하고, 향후 30%까지 확대하겠음(보고). 옳은 방향이니 그대로 밀고나갈 것(지시사항). 대충 이런 보고와 지시가 오고 갔다. 역시 이번에 동원한 나의 든든한 빽도 성공적이었다. 그리하여 130여명 재외공관장 중 무려 20명이나 외부 전문가들로 채우는 대사건이 손쉽게 이루어지고 이후 고위공무단제도 도입도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아,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겁도 없었던 내가 참으로 아찔할 뿐이다.

8)인간 노무현의 소탈한 모습도 많이 등장한다. 다음은 김만수 대변인의 글이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시절의 일이다. 어떤 기자와 함께 화장실에서 나란히 서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있는데 노무현 후보가 옆으로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소변을 보는게 아닌가. 나는 별 생각없이 계속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기자는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어색하게 엉거주춤 인사는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후보인데 먼저 자리를 비켜 드려야 하나? 아랫사람들이 있으면 좀 있다 들어오시지...뭐 대충 이런 불편한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노후보는 아주 자연스럽게 볼일을 보면서 업무지시까지 하는 게 아닌가!
“만수씨” “예”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게 어디더라? 시간이 좀 부족할 거 같으니까 서면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미리 처리해 놓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죠. 그래도 같은 내용이라도 아마 직접 물어보려고 할 겁니다.”
“알았네. 할 수 없지 뭐.”
그러곤 볼일을 마치고 손을 씻고 특유의 한쪽 어깨가 조금 더 올라간 약간 건들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경쾌한 발걸음,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기자는 경악했다. 다른 후보 캠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담배를 피웠다 끊었다를 반복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끊었다가 권여사님 몰래 조금씩 피우기도 했다. 퇴임 무렵에는 고뇌와 비례해서 흡연량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금강빌딩 시절에는 후보도 담배를 피웠고 참모들도 흡연가가 많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후보가 있는 자리에서도 담배는 예사였고 보도된 내용처럼 다리를 꼬고 앉아 맞담배를 하거나, 둘이 있을 경우 책상에 걸터앉아 담배를 나누면서 의논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아마 이런 모습을 캠프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봤다면 대경실색할 만 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유도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스와 추종자가 아닌 동업자로서의 친밀감과 아울러 책임감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기억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린 결정사항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의논해서 자발적으로 하기로 결정한 일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후보가 된 다음 참모들과의 맞담배는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후보 옆에 현역 의원들이 많아졌고 당에서 관리하는 의전으로 후보가 관리되면서 그렇게 되었다. 담배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후보도 담배를 끊은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다니지는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네 담배 있나? 하나만 주게.”하는 식으로 얻어서 피우곤 했다. 나는 업무상 후보 곁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담배를 많이 빌려 드린 편이다. 후보되기 전에는 나도 같이 옆에서 피우곤 했는데 후보가 되니까 같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대통령 당선자로 신분이 바뀌니까 그때부터는 정말 대통령 당선 실감이 났다. 당선자 시절 어느 행사 대기장소에 같이 앉아 있는데 나더러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하더니 “라이터도 주게” 하시길래 평소처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여 드릴려고 두 손으로 라이터를 처~억 켜서 담배로 가져가는데 후닥닥 경호원이 달려드는 게 아닌가! 나도 좀 놀랐지만 경호원들도 놀란 모양이다. 웃고 말았지만, 라이터 같은 물건은 경호원 통해서 확인하고 전달해야 하는 것이었다.

9)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위원장을 맡은 윤승용 전 홍보수석(현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의 발간사를 옮긴다.

참여정부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인사들 가운데 정치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여 어줍잖은 책을 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운명을 달리한 이후 시중에는 노 대통령을 소재로 한 많은 책들이 출간됐습니다. 이런 마당에 저희들의 이 책이 또 하나의 췌언(贅言)을 덧붙이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요즘이 지방선거를 앞 둔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어서 이번 책 발간이 자칫 시중 정치인들의 출마용 책 내기 행보처럼 오해될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은 책을 함께 펴내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참모들의 기억이 퇴색하기 전에 기록에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노 대통령이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혹은 대통령 재임시절에 가장 곁에서 대통령을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고민, 심지어는 일거수일투족까지도 매우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때문이 이 책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기록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일화 일 수도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대통령 기념사업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본 참모들의 시선을 통해 대통령의 참모습을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게 도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상 노 대통령 서거이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많은 사시와 왜곡의 일부가 바로잡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편견은 여전합니다. 이 책에는 대통령의 참모습, 이를테면 민주주의와 진보, 지역구도 타파, 특권철폐, 지역균형발전 등에 대한 집념, 인간적 소탈함, 인간에 대한 따뜻함 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노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높은 가치와 이상을 살아남은 저희들이 결코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로 삼기 위함입니다. 검찰 수사에 몰려 봉하마을의 부엉이바위로 올라가야만 했던 노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참모들의 참담한 반성문도 담겨 있습니다.

“헉!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인자는 너거들이 죽을 차례다. 토론 좀 하고, 정리까지 한 번 해봐라, 나는 한참 좀 쉬어야겠다. zzz” 2009.02.04 21:40 | 노무현

지난해 입춘 날 노 대통령이 성치않은 허리를 부여안고 밤늦게까지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리다 참모들과 공유하는 인터넷의 비공개카페에 '카페의 운영 시스템과 연구할 줄거리'를 올려놓은 대목입니다.(양정철비서관 발문 참조)
대통령님, 이제 '너거들 즉 우리가 죽을 차례'입니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대통령님이 못 다한 뜻을 이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젠 좀 편히 쉬십시오.

이 책에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가 추천사를 썼고 김우식, 문재인 전 비서실장 등이 발문을 썼다

* 위의 내용은 알라딘측에서 제공하는 책소개 내용입니다.

잠깐 소개되는 내용에서도 인간 노무현의 진솔함이 묻아나는 것 같습니다.